4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Part 3 : 두번째 회사 초기)
급하게 다녀온 어학연수(3개월 정도 친구와 다녀왔다.)
그리고 어학연수중에 꾸준히 사용한 영어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아도 OPIC-IM2 스코어를 얻었다
(물론, 준비없이 토익도 봤는데 700 겨우 넘고 망했었다)
이제 나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다.
첫째, 나는 1년을 못채우고 직장을 그만두었기에 다시 신입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자세는 유지하기로 했다.
그만둔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를 받아 들여야 한다.
더이상 내가 좋은 직장에 다녔었다고 기억해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직장을 그만둔 현재 백수친구 일뿐이었다.
다시 나는 엑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필터를 걸어서..
*구분: 1,2,3,4,5,6....
*지원회사명: 어디, 어디, 어디
*지원부서명: 어디, 어디, 어디..
*연봉정보: 얼마, 얼마, 얼마...
*자소서 작성여부: O, X, X, X, O...
*지원여부: O,O,X...
*서류발표일: 언제, 언제,....
*합격여부: X, X, X, X, X, X, X.......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로이킴이라는 사람이 슈퍼스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찬바람이 불었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들렸다.
처음 취업을 했던 S반도체회사에는 입사하기까지 300개의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
그중에는 흔히 하는 S전자, H자동차도 있었고, 마구잡이 지원도 많았다.
두번째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200개정도의 회사에 지원을 했었다.
(복사와 붙여넣기는 줄고, 자기소개서는 있는 그대로 쓰게 되었다.)
정말 아무도 모를 것같은 회사, 연봉 1천대, 2천대의 회사.
나는 눈을 낮추고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모두 실패를 했고,
이제 친구들로 부터 연락도 뜸해졌다.
아니,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된다.
정리하면,
어학연수를 다녀왔으나, 경력 10개월의 회사경력을 가지고, 다시 신입으로 지원해도
사회는 호락호락하게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취업시장이 빙하기로 들어가는 초기단계였다. 내 기억으로는..
새해가 되었고, 나는 겨우 합격하여 H대기업의 협력회사인 H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역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연봉도 대폭 줄었다. 아니, 오히려 내 실력에 비해 첫번째 회사는 나에게 많은 금전을 지급한 것 같다.
아쉬웠다.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구를 탓 하겠는가...첫번째 회사 팀장을 탓할까?...이미 지난 일이 되었다.
입사하고 9명이나 되는 신입 동기가 생겼으나,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한두살 어렸다.
그리고 한달만에 3명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3달째 되었을 때에는 10명중 5명만 회사에 남아 있었다.
첫번째 이탈자는 같은 기획팀 동생이었다.
3주간의 OJT를 마치고 회사를 열심히 알아가던중 어떤 미션?(엑셀로 BOM 등 원가 정리)을 받았다.
나도 차근히 해나가는데. 애초에 이 동생은 그것을 하기 싫어 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본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삼성, 현대만 바라보는 친구였는데
이곳에 와서 연봉이 이렇고, 지역도 이렇고 해서 실망이 큰거 같았다.
그 업무를 받고 내가 오후쯤 마무리 지어갈때, 그 동생은 사라졌다.
알고보니 콜택시를 불러서 그길로 택시를 타고 사택에서 짐을 챙겨 고향으로 내려갔다.
회사관계자 누구에게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나도.. 그만 둘까..
라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기로 했다.
이때에 가장 기획팀으로서 업무를 많이, 그리고 세부적으로 했었다.
표준원가, 견적원가, 추정손익, 실적손익, 회의체 운영, 관세청 법인심사 대응, 국세청 세무조사 대응,
해외 투자환경처 조사, 투자검토, 공시 및 IR, 예산 수립 및 편성/통제, 동종(경쟁사)업계 손익분석
그리고 기획업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사업계획 까지...
제일 먼저 채를 잡았던 것은
"원가"였다.
회계학이 전공이었기에 원가부분은 이해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기업에서 손익을 다루는 부서(재경, 회계, 재무, 기획 등)는
원가를 모르면 그 이후의 계수들을 읽을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번 원가의 구조를 꿰뚫게 되면(개인차가 있어서 1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는 모름)
회사가 어떻게 손익이 나는지 밑그림을 그릴 수가 있게 된다.
그래서 원가를 잡고 그 이후에 제조쪽으로 채를 바꿔잡으면서
대학교에서 배웠던 원가/관리회계를 실무적으로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하루 용돈으로 1,000원을 주면 내입장에서 300원 오락실, 200원 얼린 쥬시쿨
300원으로 과자, 남은 200원은 비상금...으로만 계산 했는데
원가를 이해하게 된 이후로는
아버지의 한달 수입이 100만원(예를들어)이고 아버지는 70만원에 물건을 사오기때문에
30만원이 남고, 관리비와 공과금 10만원을 빼면 20만원이 남는다.
나에게 용돈 3만원(1,000원 x 30일)을 주면 아버지는..
아버지의 매출액 중 3%, 세전이익의 15%를 (나름 주주인..)나에게 배당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아버지는 나때문에 한달동안 술을 10병..줄이셔야 한다(이것이 원가절감)
회사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어느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면
회계쪽 일은 눈에 익기 마련이다.
물론, 투자검토 같은 주관과 예측(포어캐스팅)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사항은
그에 따른 객관성있는 세부자료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어느정도 신뢰성 있는
주장을 할 줄 알아야 하기에 고되기는 하다.
한주 한주가 다르게
팀장은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그 때마다 업무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모르는 것은 현장관계자나 대리급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그리고도 모를때는
첫번째회사를 다니면서 알게되었던 업계 관계자들에게 까지 물어보며
그렇게 나의 영역을 넓혀 갔다.
그리고 1년이지나고, 사원급 중에서 유일하게 인사고과 A등급을 맞았다.
보상은 연봉 0.5% 추가 인상....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금액과는 별개로 무언가 인정받았다는 심리때문에 많은 만족감을 느꼈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회사를 만난 것 같았다...
회사의 일은 한달주기로 반복되는 일과 이슈가 있는 비정기적 업무로 나뉘었다.
모든 일에 관여를 하며 주도성을 가지고 일을 했었다.
생산라인의 탁한 공기가 익숙했고, 마스크와 안전모는 내자리 옆 서랍위에 있었다.
여름은 매우 더웠고, 겨울은 매우 추웠다.
작업복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기 시작했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어느새 꾸밈이 적어졌다.
하지만, 통장을 볼때면 못내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인생은 실전이었다. 제 아무리 계산을 해도 내가 결혼해서 집은 살 수 있을만한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웃으며, 나는 팀내 분위기 메이커로서 살갑게 사람들을 대하고
회사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나는 신호위반한 차에 치여
할부가 겨우 끝난 내 차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고 누군가의 나침반을 흔들어 놓는 실수를 범하는
"조언, 충고, 말"을 하게 될수도 있기에..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고,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거를 것은 거르고, 공감할 것은 공감하며,
능동적/주체적으로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고 생각합니다.